인플레이션 시대, 투자의 패러다임 바뀐다 기업공시/뉴스/경제일반2008. 3. 5. 17:00
머니투데이 2008-03-05 07:54 |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주식시장은 끔찍했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뛰면서 우량 기업에 적용되는 최우대 금리마저 두자리수로 치솟았다. 사람들은 금과 인스턴트 식품을 사 모았다. 20년간 낚시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식량난으로 식료품점이 문을 닫을지 모른다며 낚싯대를 손질했다."
1982년 상반기 미국 상황이다. 이 글은 미국 '마젤란펀드'의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의 '피터 린치 주식투자(Beating the Street)'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아마도 이 때가 전세계가 경험한 마지막 인플레이션의 악몽일 것이다. 당시 인플레이션은 이란이 1978년 12월부터 1979년 3월까지 석유 수출을 정지하며 일어난 제2차 오일쇼크의 파장 때문이었다.
이후 전세계는 20년 이상 장기 저물가 시대를 누려왔다. 정보기술(IT) 혁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과 중국의 대규모 저임금 노동력으로 인한 값싼 공산품의 공급이 기반이 됐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된 저물가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원인은 크게 4가지다. 우선 저물가 기조의 토대가 됐던 IT 기술 혁명과 중국 저임금 구조가 깨지고 있다. IT 기술이 추가 혁명을 이루지 못한 채 주춤하면서 생산성은 제자리 걸음이고 중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임금이 올라가고 있어 공산품 가격을 값싸게 유지하는데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아울러 중국을 위시해 아시아, 중동, 동유럽 등의 국가들이 경제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원자재 수요가 급증한데다 장기간 계속된 저금리로 전세계에 유동성이 넘쳐 흐르면서 돈이 남아돌자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상품 가격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 조짐이 완연해지고 있다.
주식 투자만으로 세계적인 갑부가 된 워렌 버핏은 거시경제와 관계없이 오로지 기업의 내재가치에 주목해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버핏이 유일하게 신경 쓰는 거시지표 하나가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물가 상승이 기업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성공적인 주식 투자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의 제2차 오일 쇼크를 넘어설 정도로 세계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는 현재, 인플레이션을 투자의 제일 조건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신(新) 인플레이션의 시대, 투자자는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상품 가치는 오르고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는 개념이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가장 '바보'는 현금을 장롱 속에 넣어두는 사람일 것이다. 그 다음 '바보'는 단지 안정적이란 이유만으로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이자를 주는 은행 예금에 돈을 넣어두는 사람일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현금은 '추녀'고 '미녀'는 상품이다. 최근 금에 투자하는 펀드, 원유와 곡물에 투자하는 원자재 펀드 등 상품 펀드가 인기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원자재가 풍부한 국가, 예를 들면 중동이나 브라질, 러시아 같은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도 투자 대안이 될 수 있다.
주식은 어떨까. 버핏의 방식을 따르자면 이익성장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기업이 아니라면 신중해야 한다. 채권은 물가가 오르면서 금리가 오를 조짐을 보일 땐 관망하다 채권 금리가 주식의 연평균 상승률(미국을 기준으로 할 때 6%)을 웃돌 때가 기회다.
부동산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가장 안전한 자산이다. 하지만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질수록 금리 상승 압력 역시 함께 고조될 수 있으므로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는 초기에는 금리 방향이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니 더욱 조심스럽다.
투자의 역사는 반복된다. 마지막 인플레이션의 시대였던 1980년대 초 미국에선 원유 가격이 급등하고 사람들은 소비를 줄여 경기는 침체 됐으며 물가 상승 때문에 금리는 치솟아 올랐으며 금리가 오르니 주가는 하락했다.
이런 상황이 그대로 재현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장기 저금리 기조가 깨질 조짐이 나타나는 현재 상황에서는 과거 패턴을 염두에 두고 투자의 지혜를 얻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다만 인플레이션 때 주가 하락은 과거 역사를 봤을 때 매수의 기회였다. 린치는 1982년 상반기 주가 급락 때 주식을 사모아 기록적인 펀드 수익률을 기록했다.
20여년만에 도래하는 인플레이션 시대에 맞춰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권성희기자 shkwon@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