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유가하락이 금융시장에 주는 영향

작년 7월 75달러가 넘었던 원유가격이 최근에 거의 50달러까지 떨어졌다. 원유가격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면 이것은 세계 금융시장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연간 경상수지로 보면 원유생산국들의 흑자 금액이 2006년의 경우 아시아국가의 경상수지 흑자액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거 1970년대에도 유가 급등이 만들어 낸 오일 달러의 거대한 흐름은 1980년대에 세계 금융 시장 변동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최근의 원유 가격 급락이 주는 영향을 짐작하려면 먼저 유가 급등으로 산유국에 집중된 오일 달러의 행동을 대략이나마 살펴보아야 한다. 아시아 수출국가들과는 달리 산유국들은 오일 달러를 달러가 아닌 다른 자산에 많이 투자한다.

이는 중동 산유국들이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유럽과 맺는 관련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중동을 비롯한 산유국들은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 원유를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팔고 싶어하고, 비록 달러로 팔더라도 달러 표시가 아닌 다른 자산에 투자하고 싶어한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달러 중심의 세계 금융질서에 금을 내는 행동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원유가격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보통의 경우 원유가격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사우디가 중심이 되어 생산량을 줄여서 가격 하락을 방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시도가 잘 먹혀 들지 않고 있다.

또 그 동안 올라가던 원유를 비롯한 국제상품 가격에 투자했던 헤지 펀드들이 유가 하락으로 투자 손실을 보자 가격 상승의 시기와는 반대로 여기서 빠져 나오려는 이들의 행동이 가격 하락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이상을 배경으로 원유 가격 하락이 주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대략 다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원유 수입국의 입장에서 보면 실질 소득이 올라가는 것이다. 원유 수입을 위해 지출하는 돈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원유 수입국들의 물가를 낮추며, 소비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이를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물가에 대한 걱정을 줄이면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졌다.

다음으로 원유 수출국의 처지에서 보면 오일 머니의 축소다.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오일 머니의 지나친 축적이 달러 중심의 세계 금융질서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원유 가격의 하락은 달러 중심의 질서를 더 연장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정치적인 측면이다. 중동 산유국들은 크게 이란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나머지 세력으로 구분되어 있다.

지금 미국의 가장 큰 골치거리는 이란이다. 원유가격의 하락은 이란의 소득을 줄인다. 사우디의 입장에서는 비록 원유 가격의 하락으로 수입이 줄어들더라도 이란이 더 이상 세력을 확장하는 것은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점에서 사우디는 미국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러시아다. 원유 가격을 비롯한 자원 가격의 상승은 러시아의 힘을 엄청나게 키웠다. 원유 가격의 하락은 반대로 러시아의 힘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세계 금융 시장에서는 원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전반적인 하락을 세계 유동성이 축소되는 시작으로 보는 걱정이 있다. 여기에 중국의 긴축 정책에 대한 염려도 끼어들고 있다.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에 투자했던 자금들이 여기서 빠져 나와 어디로 갈 것인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동성이 얼마나 위축될 것인지를 짐작하는 것은 나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다.

이미 투자의 대가들은 시장의 시간을 맞추려는 부질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아서 자꾸만 그 시기를 짐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신데렐라는 마술의 옷을 입고 무도회장에서 왕자와 춤을 추고 있다. 12시 종이 울리기 전에 춤을 멈추고 무도회장을 빠져 나와야 한다. 나도 신데렐라와 같아서 그 춤을 조금만이라도 더 추고 싶다. 무도회장에 시계가 걸려있지는 않지만 아직은 12시가 아닌 듯하다.

[하상주 가치투자교실 대표]

*이 글을 쓴 하 대표는 <영업보고서로 보는 좋은 회사 나쁜 회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홈페이지 http://www.haclass.com으로 가면 다른 글들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