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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에게 배우는 투자의 지혜 (12) | 짐 로저스 - 세계는 넓고 투자할 곳은 많다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존 템플턴이나 워런 버핏이 첫 번째가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처럼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짐 로저스(Jim Rogers, 1942~)가 단연 1위로 손꼽힐 것이다.

한국 투자자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창업한 인물이다. 그러면 이제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그런데 소로스에 비해 로저스를 잘 모르는 이유는 아마도 로저스가 한창 일할 나이인 서른일곱 살에 공식적으로 은퇴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소로스는 그 이후에도 계속 퀀텀펀드를 운용했고, 자타가 공인하는 헤지펀드계의 일인자로 부상했다.

로저스와 소로스가 퀀텀펀드를 창업했던 1969년은 헤지펀드 산업이 막 발아하던 무렵이었다. 퀀텀펀드 역시 트레이더 역할을 맡은 소로스와 애널리스트인 로저스를 제외하고는 여비서 한 명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당시의 퀀텀펀드는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상품시장과 채권시장, 외환시장까지 투자 대상으로 하면서 전 세계를 무대로 투자를 감행한 최초의 헤지펀드였다. 퀀텀펀드는 로저스와 소로스가 함께한 1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연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았다.


12년간 33배의 수익률

퀀텀펀드가 1969년부터 1980년까지 거둔 누적 수익률은 3,365%로, 이 기간 S&P 500 지수의 상승률 47%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펀드 자산은 1,200만 달러에서 2억 5,000만 달러로 늘어났고, 로저스는 자신의 몫인 1,400만 달러를 갖고 퀀텀펀드를 떠났다. 로저스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그의 전 재산은 600달러였다.

퀀텀펀드를 그만두었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월스트리트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서 금융론을 가르쳤고, 자신의 투자 펀드를 운용하면서 세계 각국의 저평가된 주식시장과 상품시장, 외환시장을 골라내 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10배 이상의 투자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

1990년 그는 22개월간에 걸쳐 세계 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BMW 오토바이로 육대주를 달린다. 중국 대륙을 지나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사하라 사막과 아프리카의 오지를 남북으로 관통한 뒤 호주를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른 다음 남미의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알래스카까지 질주한 것이다. 총 여행 거리는 6만 5,067마일. 기네스북에도 오른 이 대장정을 담은 책 《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이 여행이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내가 평생 동안 계속해서 받아야 할 가르침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서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대지 위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나의 두 발이 딛고 있는 지구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1998년 12월, 이번에는 노란색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개조해 다시 한번 세계 일주에 나선다. 116개국 15만 2,000마일을 달려 역시 기네스북에 그 기록을 올렸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내전이 이어지고, 무장 단체가 산재해 있는 지역들을 그는 약혼녀와 함께 달렸다(여행 중인 2000년 1월 1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로저스는 이 여행기를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는데, 그 가운데 한 구절을 소개한다.

“만약 여행을 하다 내 인생이 끝난다면 나는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내 열정을 끝까지 추구했으니까. 월스트리트에서 활동하다 주머니에 여윳돈 얼마를 남겨놓고 죽는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더 나은 일이다.”

두 책을 읽어보면 역시 로저스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세계 일주를 하면서 지나치는 곳마다 증권거래소를 방문하고 장외 시장을 살펴보고 그 나라 경제의 장단점과 향후 전망을 따져본 뒤 투자 결정을 내렸다.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데다 비즈니스 스쿨에서 강의를 할 만큼 풍부한 지식을 소유한 인물답게 그의 밑바닥 경제 분석은 매우 날카롭고 시사적이다. 그래서 두 책은 여행기라기보다는 국제 경제와 글로벌 투자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저스는 정부가 기업과 서비스 부문까지 소유하면서 모든 경제 문제를 다 해결하려 드는 국가주의를 경계한다. 대신 건전한 재정과 통화, 자유 무역을 통해 시장주의를 추구하는 나라를 유망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그는 21세기는 중국의 시대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 역시 중국인의 기업가 정신과 중국 정부의 과감한 시장주의 도입에 따라 내린 결론이다.


상품시장의 가능성을 보다

로저스의 투자 전략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직선적이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적인 경제 원칙에서 출발한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갑자기 틀어지는 것을 주시해 거기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2005년에 출간한 《상품시장에 투자하라》에서는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상품시장의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상품은 우리 주위에서 늘 보는 것들이다. 석유와 구리, 설탕, 커피, 밀, 면화, 돼지고기 등이 모두 상품이다. 현재의 상품시장은 1980년대와 90년대의 긴 약세장으로 인해 생산 능력이 크게 위축됐고, 결국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화됐다. 이 같은 펀더멘털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따라서 그 동안에는 상품시장이 강세를 보일 것이다.

기회는 강세장에 있다. 주식시장과 상품시장의 강세장은 17~18년을 주기로 자리를 바꾸어왔다. 이 같은 강세장의 자리바꿈은 펀더멘털의 변화로 인한 것이다. 1999년에 시작된 상품시장의 이번 강세장은 2010년대 중반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게 로저스의 주장이다.

펀더멘털의 중심은 수요와 공급이다. 공급의 가장 큰 변화는 상품시장의 오랜 약세장으로 인해 생산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너무 부진했다는 점이다. 생산 능력을 회복하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요의 가장 큰 변화는 로저스가 가장 주목하는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은 전 세계 원자재를 보이는 대로 빨아들이는 공룡과도 같은 존재다.

로저스는 상품시장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면서도 유가가 얼마까지 오를 것이라든가 설탕에 투자하는 게 가장 낫다는 식의 예단이나 추측은 하지 않는다. 다만 상품시장이 걸어온 수십 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의 펀더멘털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투자할 대상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한다.

로저스는 1942년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 데모폴리스에서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벽촌 마을이었다. 그는 고등학교와 예일 대학교를 모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 로즈장학생으로 선발돼 발리올 칼리지에서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다.


세계 금융시장의 인디애나 존스

그는 옥스퍼드로 유학을 가기 전 여름 도미니크 앤드 도미니크에서 일하면서 월스트리트의 매력에 푹 빠졌다. 로저스는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늘 지금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에서는 내가 칠레에서 혁명이 일어나 구리 가격이 오를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으면 돈을 주었다. 정말 놀라웠다. 더구나 나는 돈이 없었고,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월스트리트에는 돈이 아주 많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

로저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사주간지 〈타임〉이 붙인 ‘세계 금융시장의 인디애나 존스’가 가장 잘 어울린다.

그는 두 번째 세계 일주 당시 한국에도 들렀는데, 그때 다른 종목은 제쳐두고 경구피임약 회사의 주식을 매수했다. 그 회사는 IMF 여파로 부도가 난 상태였지만, 그는 한국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이 급신장하고 있으며 여성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가질수록 피임약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2005년까지 그 회사 주식을 보유해 무려 15배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2006년에 한국을 다시 찾은 그는 한국의 유아 관련주가 유망하다고 했다. 지금은 출산율이 매우 낮은 상태지만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이 계속되면 아기를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로저스는 현재의 중국 주식시장이 20세기 초의 뉴욕증권거래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중국 주식을 매수하기만 하고 단 한 주도 팔지 않았는데, 2003년에 태어난 딸에게 물려줄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 주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투자하기보다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기초해 앞으로의 트렌드를 내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령 중국의 경제 발전에 따라 공급이 계속해서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공항, 항만, 도로, 수도 같은 사회간접자본시설 관련 주식이나 중국인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관광 산업 주식이 그가 유망하다고 손꼽는 종목이다.

로저스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의 딸에게 젖먹이 시절부터 중국어를 가르쳤다. 교양 있는 중국인 보모를 구하기 위해 광고를 내기도 했고, 주말마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고 딸과 함께 중국어로 놀게 했다. 중국인 보모에게 24시간 중국어만 쓰게 했으니 그의 딸은 기저귀를 가는 동안에도 중국어를 배운 셈이다.
그는 심지어 현재 살고 있는 뉴욕 맨해튼의 집을 팔고 중국어권인 싱가포르로 이주할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19세기 초에는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고, 20세기 초에는 뉴욕에 자리 잡는 게 필요했다면, 21세기에는 중국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류(村上龍)가 로저스에게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를 가져가 사인을 부탁했더니 이렇게 써주었다고 한다.

“류, 인생은 짧다. 멀리, 멀리까지 가서 세계를 보라.”

정말 그다운 명언이 아닐 수 없다.

★ 본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으며, 투자로 인한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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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노우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