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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에게 배우는 투자의 지혜 (9) | 존 네프 - 분위기보다 원칙이 더 중요하다

월스트리트에서 발행되는 가장 권위 있는 투자 전문 주간지 〈배런스〉는 매년 초 투자 전문가들을 초청해 ‘라운드테이블’이라는 이름으로 그 해의 금융시장 전망과 유망주를 발굴하는 좌담회를 개최한다. 라운드테이블 내용은 주식 투자자들이 한 해의 주식시장 전망을 위해 꼭 읽어야 할 기사 중 하나다. 물론 이 라운드테이블에 초청된 전문가들은 월스트리트에서도 손꼽히는 인물들이다. 특히 존 네프(John Neff, 1931~)는 2007년 현재 39번째를 맞는 라운드테이블에 30차례나 초청받아 지금까지 가장 많이 참가한 전문가다.

네프는 그러나 한국의 주식 투자자들에게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이미 1995년 말 펀드매니저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하지만 투자 전문지에서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들을 상대로 ‘현존하는 최고의 펀드매니저가 누구냐?’라는 설문조사를 하면 여전히 워런 버핏, 피터 린치, 존 템플턴 등과 함께 ‘톱 파이브’ 안에 그의 이름이 오른다.

사실 피터 린치의 마젤란펀드가 세계 최대의 펀드로 부상하기 이전에 오랫동안 펀드 규모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네프가 운용했던 윈저펀드였다. 그는 하나의 펀드를 30년 이상 운용하면서도 꾸준히 높은 투자 수익률을 기록했다.

네프가 윈저펀드를 운용했던 1964년 6월부터 1995년 12월 말까지 31년간의 연평균 수익률은 13.7%에 달한다. 이 기간 동안 S&P 500 지수의 연평균 상승률은 10.6%였다. 이 차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만약 1964년 6월에 1만 달러를 S&P 500 지수에 투자했다면 그가 은퇴한 1995년 12월에 22만 3,000달러가 됐겠지만, 윈저펀드에 투자했다면 55만 4,640달러가 됐을 것이다.

네프가 이처럼 높은 투자 수익률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투자 원칙을 끝까지 지켜낸 용기 때문이다. 그의 투자 원칙은 사실 시장에 역행하는 것이었고, 일반인은 물론 다른 펀드매니저들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받는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절대적인 가치 투자자

네프의 투자 방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치투자라고 할 수 있다. 저평가된 주식을 매입해 주가가 회복하기를 기다리는 템플턴이나 내재가치에 비해 형편없이 평가되고 있는 주식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버핏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은 그가 ‘절대적인 가치 투자자(absolute-value investor)’라는 사실이다. 절대적인 가치 투자자는 시장 분위기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표가격을 유지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가 팔 때 주식을 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네프는 ‘완벽한 시장 역행 투자자(consummate contrarian)’로 불리기도 한다.

절대적인 가치투자의 첫 번째 원칙은 ‘싼 주식’을 고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이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있는 저평가주를 선별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수많은 종목 가운데 어떻게 그런 주식을 구분해낼 수 있을까? 네프는 매우 간단한 공식으로 출발한다. 소위 ‘네프의 공식(Neff Formula)’으로 불리는 이 방식은 아마추어 투자자들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우선 해당 기업의 배당수익률과 이익성장률을 더한 다음 현재의 주가수익비율(PER)로 나눈다. 네프는 이렇게 계산한 수치를 ‘총회수율(Total Return Ratio)’이라고 부르는데, 총회수율이 2를 넘지 못하면 투자 후보 종목에서 제외한다. 언뜻 보면 네프의 공식에 주가가 배제돼 있는 것 같지만 PER에 현재 주가가 반영돼 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말하는 싼 주식이란 PER을 감안한 상대적인 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프의 공식을 적용하는 예를 들어보자. 이익성장률이 한 해 30%에 달하는 A라는 기업은 시장에서 성장주로 각광받으면서 현재 주가가 5만 원에 이르고, PER은 30, 배당수익률은 3%(한 해 배당금이 1,500원)에 달한다. A기업의 총회수율은 이익성장률과 배당수익률을 합친 33을 30(PER)으로 나눈 1.1이다. 반면에 한 해 이익성장률이 10%에 불과한 B라는 기업은 시장에서 소외되고 저평가돼 1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B기업의 PER은 5, 배당수익률은 5%(한 해 배당금이 500원)라고 하면 B기업의 총회수율은 10과 5를 더한 15를 5(PER)로 나눈 3이다.

네프는 A기업의 성장 잠재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주가가 떨어져서 PER이 낮아지지 않는 한 A기업의 주식을 매입하지 않는다. PER이 떨어져야 총회수율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익성장률이나 배당수익률이 더 높아져 오히려 총회수율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네프는 30~40%의 이익성장률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경계한다.

그렇다고 ‘총회수율 조건’을 충족한 B주식을 무조건 매입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저PER 공략가(Low PER Shooter)’라고 표현할 정도로 낮은 PER을 강조하는 네프지만 그의 매입 대상이 되려면 최소한 연평균 7% 정도의 이익성장률을 유지해야 하고 건전한 대차대조표와 충분한 현금 흐름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해당 업종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을 상회해야 하고, 유능한 경영자가 있어야 하며, 낮지만 꾸준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어야 한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라는 강점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시장 전망도 밝아야 한다.

네프가 매수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은 이처럼 무척 까다롭고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네프 스스로도 ‘최선을 다해 악착같이 일하는 것(nose-to-the-grindstone work)’만이 확신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그가 매수 대상을 찾기 위해 철저히 분석하고 자신의 투자 원칙을 절대 버리지 않는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한다. 네프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오하이오 주 톨레도 외곽의 소도시 왓슨에서 태어났다. 그가 네 살 되던 해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와 재혼한 양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늘 빈곤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줄곧 직업을 가져야 했는데, 그때부터 돈 관리는 자신이 직접 주도면밀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업 성적이 별로 뛰어나지 않았던 네프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공장을 거쳐 15년 만에 만난 친아버지의 자동차 부품 회사에 들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물건을 살 때 지불해야 할 가격을 잘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쳤다. “잘 산 물건이라야 잘 팔 수 있다.”는 게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네프는 해군에서 2년간 복무하면서 항공전자 기술을 익혔고, 정부가 제대 군인에게 주는 장학금으로 톨레도 대학에 들어가 산업마케팅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그는 학업에 흥미를 느껴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는데, 특히 기업재무론과 투자론을 공부하면서 재무관리에 적성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게다가 당시 톨레도 대학의 재무관리학장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증권 분석》의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시드니 로빈스였다. 네프는 그런 영향을 받아 가치 이론에 입각한 투자 철학을 갖게 된 셈이다.

대학 졸업 후 클리블랜드의 내셔널 시티뱅크에 들어간 네프는 증권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야간대학원에서 재무관리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 내셔널 시티뱅크의 은행신탁부 수석 애널리스트가 된 네프는 1963년 필라델피아의 웰링턴 매니지먼트로 자리를 옮겼고, 1년 뒤에 웰링턴 윈저펀드의 운용을 맡게 되었다. 그가 웰링턴 매니지먼트로 옮긴 것도 자신의 투자 원칙에 대한 고집 때문이었다.


소외된 종목에서 가치 재발견

그는 내셔널 시티뱅크에서 근무한 8년 동안 투자 종목 선정을 둘러싸고 은행의 신탁위원회와 자주 마찰을 빚었다. 최선의 투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종목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는 철저한 기본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는 게 네프의 지론이었다. 당연히 그는 시장에서 소외된 종목의 매수를 주장한 반면, 신탁위원회는 고객들이 안심할 수 있는 소위 블루칩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을 요구했다. 더구나 네프가 강조하는 훌륭한 펀드매니저의 조건 중 하나가 ‘투자 기업에 관한 나쁜 뉴스가 나왔을 때는 신속하게 팔아야 한다’는 것인데, 은행에서는 신탁위원회의 매각 승인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나쁜 뉴스에 대한 책임마저 그에게로 돌아왔다.

네프는 자신의 펀드를 운용하며 누구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했고, 일단 결심하면 인내심을 갖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했다. 31년간 윈저펀드를 운용하며 거둔 놀라운 투자 수익률은 그의 원칙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웰링턴 매니지먼트는 낮은 펀드 수수료를 무기로 크게 성장하기도 했으나, 나중에 뱅가드 그룹으로 인수돼 그의 펀드 이름도 뱅가드 윈저펀드로 바뀌었다.)

네프는 인터넷 주식을 비롯한 소위 첨단기술주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1999년 “주가가 어리석을 정도로 과대평가됐다.”고 지적하며 S&P 500 지수선물과 나스닥 100 지수선물을 매도하고 첨단기술주의 공매도에 주력했다. 네프의 공식에 따라 계산한 S&P 500 종목의 평균 총회수율은 당시 0.3에 불과했다. 네프의 기준으로 보면 도저히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거품이 잔뜩 낀 상태였다. 주식시장은 그가 예측한 대로 2000년 초부터 급락세로 돌아섰지만 사실 선물 매도와 주요 종목의 공매도는 매우 위험한 투자였다. 그가 이처럼 위험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전체 투자자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세금이 면제되는 지방채에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자신의 예상이 어긋나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던 셈이다.

네프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내가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어린 시절 내가 곧잘 도로 표지판이 잘못됐다며 따지고 드는 것을 보고는 누구와도 잘 다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말씀은 사실 맞는 것이다. 나는 지금 더 나은 것과 싸우고 있다. 주식시장이 그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가 지금까지 지켜온 투자 방식은 시장과 대결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다수를 따라가서는 결코 투자에 성공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물론 이런 투자 방식을 실행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네프의 조언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과 어느 정도의 정신력을 갖고 있다면 굳이 다수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

출처 : http://media.miraeasset.com/media.contents.servlet.MediaSvt?mode=originalView&listmode=&media_idx=1514

★ 본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으며, 투자로 인한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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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노우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