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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에게 배우는 투자의 지혜 (4) | 워런 버핏 - 기업을 매입하듯 주식을 매수한다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 주의 소도시 오마하에는 매년 봄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2만여 명의 주주들로 붐빈다. 이들은 버크셔 헤더웨이의 회장이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Warren E. Buffet, 1930~)을 보기 위해 전날부터 이곳을 찾는다. 주주총회에서는 버핏과 찰리 멍거 부회장이 진행하는 주주와의 대화 시간이 이어지고, 사외이사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얼굴을 내비치며, 카드 게임과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기도 한다.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가가 11만 달러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여기에 참석하는 주주들은 단 한 주만 갖고 있어도 1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갖고 있는 셈이다.)

2007년에는 주주총회에 앞서 공개된 연례 투자보고서 내용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됐다. 버핏이 포스코 지분 4%, 즉 348만 6,000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가 포스코 주식을 사들인 것은 주가가 15만 원대였던 2002년부터였다. 투자보고서 발표 시점의 주가가 36만 원대였음을 감안하면 이미 배당금을 제외한 시세차익만으로도 135%의 투자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버핏의 투자 사실이 알려지자 포스코 주가는 큰 폭으로 뛰어 불과 보름 만에 40만 원에 육박했고, 국내 주식시장에 때 아닌 ‘버핏주’ 열풍이 불며 ‘버핏이 투자할 만한 종목’이라는 단기적인 테마를 형성하기도 했다.


기업을 매입하듯 주식을 매수한다

그러나 버핏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이런 단기적인 테마를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기업 내용이 훌륭한 종목을 주가가 쌀 때 매수해 장기간 보유하라는 것이다.
“단기적인 주가 움직임은 무시하고, 경기 전망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기업을 매입하듯 주식을 매수한다.”

워런 버핏의 투자 기법은 이처럼 매우 단순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보통 사람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며,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사실 기업의 내재가치를 평가하고 그 이하의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투자 원칙을 얼마나 확고하게 지켜나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버핏은 1930년에 태어나 여든 살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1993년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최고 갑부 순위 1위에 올랐으며, 2007년에도 520억 달러로 빌 게이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의 한 해 연봉은 10만 달러에 불과하다. 또 자신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오마하에 있는 평범한 주택을 1958년 3만 1,500달러에 구입해 아직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그의 전 재산은 그가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 겸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식 47만 5,000주가 사실상 전부다.

중상류층 가정의 3남매 중 둘째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계산이 뛰어났고, 돈을 모으는 데 비상한 재주를 지녔다. 증권회사 간부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주식투자 입문서를 읽었고,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객장에 자주 나갔다. 열한 살 때 처음으로 주식투자를 했는데, 시티즈 서비스라는 회사의 주식 3주를 주당 38달러에 샀다. 이 주식은 27달러까지 떨어지며 그의 속을 태우다 다시 상승했고, 결국 40달러가 되자 버핏은 가지고 있던 시티즈의 주식을 모두 팔았다. 수수료를 제하고 첫 주식투자에서 버핏은 5달러를 벌었을 뿐이지만, 이 주식은 그 후 주당 200달러까지 상승했다. 첫 주식투자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는 ‘장기적인 안목의 필요성’을 절실히 배웠을 것이다.


“나의 85%는 벤저민 그레이엄”

버핏이 그의 위대한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난 것도 우연한 좌절 덕분이었다. 열아홉 살의 나이로 네브래스카 대학을 졸업한 버핏은 하버드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였다. 그는 1년 후 다시 지원하라는 학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바로 컬럼비아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 진학했다. 당시 이 학교에는 《증권 분석》이라는 저서를 펴내 주식투자에 과학적 분석의 틀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그레이엄이 교수로 있었다.

그레이엄의 투자 철학은 한마디로 ‘내재가치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싼 주식에 투자할 경우 위험을 줄이면서도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버핏이 “나의 85%는 그레이엄”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레이엄이 그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처음 주식투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무렵 버핏은 자신의 스승인 그레이엄의 투자 이론을 그대로 따르고자 했다.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 이하로 거래되는 철도회사와 섬유회사, 자원회사 등의 주식을 매수한 것이다. 그러나 투자 수익률이 형편없었다. 결국 재조사를 통해 버핏은 이들 주식이 해당 기업의 사업 자체가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나의 15%는 필립 피셔”

1960년대 들어 버핏은 또 한 명의 스승인 필립 피셔의 투자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버핏의 회고를 직접 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나의 15%를 만난 것이다. 나는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를 읽고 저자인 피셔를 꼭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다. 피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단지 그의 지식과 생각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에 감동했다. 그레이엄 교수와 마찬가지로 피셔 역시 오늘의 나를 키워낸 진정한 스승이다.”

버핏은 그 후 피셔의 투자 이론에 따라 질적으로 우수한 위대한 기업이라면 주가가 비싸더라도 매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기업에 투자할 때는 최고 경영진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해당 기업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 회사뿐만 아니라 경쟁 업체들도 모두 조사해야 한다는 점을배웠다. 특히 보유 현금과 유가증권, 고정자산과 같은 유형의 자산 가치에 중점을 둬야 위험이 적다고 주장한 그레이엄과 달리, 기업의 내재가치를 판단하는 데는 경영진의 능력과 같은 무형의 자산이 중요하고, 이를 제대로 파악하여 소수의 회사에 투자해야 한다는 피셔의 가르침이 버핏 투자 철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버핏이 1960년대 이후 주식을 매수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나 워싱턴포스트, 코카콜라 등은 모두 주가가 기업의 장부가치보다 훨씬 비싼, 그레이엄의 투자 이론과는 거리가 먼 주식들이었다. 버핏이 이들 종목에 거액을 투자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피셔로부터 배운 질적 분석 덕분이었다.


규칙 제1조 : 절대로 손해보지 마라

어쨌든 버핏은 두 스승의 방법론을 결합해 내재가치 이하로 거래되는 주식을 매수하되 무조건 저가의 주식보다는 해당 업종에서 평판이 좋은 소수의 기업에 투자를 집중한다. 그래서 버핏이 투자하는 주식들은 현재의 순자산 가치에다 향후 예상되는 순이익과 현금 흐름을 감안한 내재가치와 비교해 현재의 시가총액이 작고, 최고 경영진은 합리적이며, 향후 전망도 밝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이들 회사의 주된 영업 활동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해야 한다는 점도 버핏의 투자 조건 중 하나다.

그가 1962년부터 투자하기 시작한 버크셔 헤더웨이는 1889년 설립된 뉴잉글랜드 지역 최대의 면직물 회사였다. 하지만 1965년 버핏이 인수할 당시 이 회사의 영업 손실은 한 해 1,000만 달러에 달할 정도였다. 1967년 이 회사는 오마하에 본점을 둔 소형 보험회사 2개를 매입하면서 투자지주회사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투자 수익이 섬유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능가하게 되었다. 버크셔 헤더웨이는 그 후 블루칩 스탬프, 시즈 캔디, 버펄로뉴스, 네브래스카 가구판매, GEICO 등을 인수해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워싱턴포스트, ABC방송, 웰스 파고 뱅크, 질레트, 제너럴 다이내믹스, 기네스 등의 주식에 투자해 큰 투자 수익을 올렸다.

특히 버핏이 1988년 6월부터 1989년 4월까지 약 10개월간 집중적으로 사들인 코카콜라는 그의 투자 철학을 잘 보여준다. 버핏은 그 기간 동안 코카콜라 주식 9,340만 주를 주당 평균 10.96달러에 사들였다. 총 투자 금액은 버크셔 헤더웨이의 전체 주식투자 자금 가운데 35%에 해당하는 10억 2,300만 달러에 달했다. 투자할 당시 코카콜라의 시가총액은 151억 달러였지만, 버핏은 현금 흐름에 기초해 코카콜라의 내재가치가 최소한 207억~483억 달러에 이른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내재가치에 비해 27~70%나 낮은 주가로 코카콜라 주식을 매입한 셈이었고, 그의 예측대로 코카콜라의 시가총액은 불과 4년 만에 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버핏은 버크셔 헤더웨이를 인수한 1965년 이후 2006년까지 단 한 차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 기간 중 S&P 500 지수의 연간 수익률이 아홉 차례나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그의 안정적인 투자운용 기법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42년 동안 그의 투자 수익률이 S&P 500 지수의 연간 수익률을 밑돈 것은 단 세 차례에 불과하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던 1999년은 그가 철저히 외면했던 인터넷 관련주가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해다. 그때 그는 “욕심이 시장을 지배할 때는 주가가 과대평가돼 위험이 너무 크다.”는 그레이엄의 가르침대로 시장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버핏은 다음해인 2000년 닷컴 버블이 붕괴되면서 주식시장이 급락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역전타를 날려 자신의 투자 철학이 유효함을 입증했다. 그 해 나스닥 지수는 39.3%, 다우존스 평균 주가는 6.2%, S&P 500 지수는 10.1%씩 떨어졌지만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가는 연초 대비 30% 가까운 상승률을 보이며 신고가를 기록한 것이다.
2006년 6월 버핏은 당시 그의 재산의 85%에 달하는 374억 달러를 자선기금으로 출연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수식어에 ‘월스트리트의 양심’이라는 또 하나의 찬사가 쏟아졌다.

버핏은 ‘기업을 매입하듯 주식을 매입한다’는 자신의 투자 철학을 끝까지 고수했고, 가치투자라는 원칙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주식투자만으로 미국 최고의 갑부가 된 버핏이 주식 외의 길로 외도(?)한 경우는 손꼽을 정도다. 정크본드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하락했을 때 정크본드를 매입한다든가 인플레이션이 예상될 때 은을 매입한 정도다. 그러나 이 같은 외도도 그의 스승 그레이엄이 물려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투자 원칙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절대로 손해 보지 말 것과 절대로 손해 보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절대로 잊지 말 것.’

출처 : http://media.miraeasset.com/media.contents.servlet.MediaSvt?mode=originalView&listmode=webzineList&media_idx=1069

★ 본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으며, 투자로 인한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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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노우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