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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달러의 힘

스노우볼^^ 2008. 1. 19. 10:02
어떤 나라가 대외거래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하자. 수출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하려면 어디선가 돈을 마련해야 한다.

대외적자에 빠진 나라가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빌려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에 저축해서 모아두었던 무엇인가를 내다파는 것이다. 예를 들면 땅이나 건물이다.

지금 미국은 대외거래에서 오랫동안 그리고 큰 금액의 적자를 보고 있다. 그래서 미국도 해외에서 돈을 빌려오고 있다.

보통 어느 나라의 대외적자가 국민총생산액의 5%를 넘어서면 그 나라는 적자를 위한 자금 마련에 고생을 한다.

이렇게 계속 적자가 쌓이다 보면 다른 나라가 적자 나라에게 돈을 잘 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빌려주더라도 이자를 높게 받고 빌려준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이미 빌려준 돈도 돌려달라고 한다.

적자 나라에 투자한 돈도 투자자산을 팔고 빠져나간다. 적자 나라에서 돈이 빠져나가므로 적자 나라의 환율은 심하게 떨어진다.

적자 나라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또는 돈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므로 자금을 구하기 힘들어져서 적자 나라의 금리는 높이 올라간다.

금리가 높이 올라가면 실물 경제 활동이 후퇴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런 현상이 극적으로 나타나면 이것을 바로 외환위기라고 부른다. 이 위기가 수습되지 않으면 결국 국가 부도를 만나게 된다.

지금 미국은 대외적자가 국민총생산액의 약 7%다. 미국은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대외적자다. 대외적자가 누적된 결과로 미국은 순대외부채가 국민총생산의 25%나 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달러는 심하게 떨어지지 않았고 미국의 중장기 금리는 거의 올라가지 않았다.

만약 개도국 어느 나라가 이런 상태에 빠져 있다면 세계의 투기자본들이 그 나라 통화의 대외 교환가치가 앞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그 나라 통화를 공격했을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나라들이 외환위기를 겪었고 세계 투기자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남미, 아시아는 물론 영국도 당했다.

그런데 왜 투기자본들이 미국의 달러는 공격하지 않는 것일까?

왜 이런가? 미국은 어떻게 일반 경제 법칙에서 예외로 벗어나 있는가?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지 않고 지금처럼 대외적자를 유지할 수 있는가?

수없이 많은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대답은 하나다. 미국은 미국 이외의 모든 나라와 다르다. 미국이 모든 나라와 다른 유일한 한 가지는 바로 미국이 달러 생산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전세계의 준비통화이기도 하고 가격 표시 통화이기도 하고 결재 통화이기도 하다. 원유를 살 때는 물론 돈을 빌릴 때도 달러로 빌리고 갚을 때도 달러로 갚는다.

이것이 갖은 힘은 엄청나다. 예를 들면 한국은 달러가 부족해서 달러 부채를 갚지 못해 국가 부도가 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미국은 국가 부도를 내는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미국은 달러를 인쇄기에서 찍어내어 빌린 나라에게 돌려주면 된다. 한국은 인쇄기에서 원화를 찍어내어 이것으로 대외부채를 갚을 수 없다. 그러면 정신이 나갔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계속되는 대외적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달러 환율 하락이 경제 위기를 만들지 않았고, 미국의 중장기 금리가 별로 올라가지 않았던 것은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달러를 갖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한 번씩 외환위기를 당해서 온갖 수모를 겪어본 나라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해 달러를 축적하고 싶어한다.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나라들은 모든 방법을 다해서 달러를 벌어야 한다. 달러를 모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출을 늘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그 나라 통화가치, 즉 환율이 낮아야 한다.

그래서 미국 달러의 대외가치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그 나라에 축적된 달러는 그 나라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 달러를 소화해줄 만한 곳도 없다. 그래서 축적된 달러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고, 시장 규모가 큰, 예를 들면 미국 국채에 투자한다.

그래서 미국 국채의 가격은 올라간다. 즉 미국 국채 수익률은 올라가기 어렵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비록 미국이 매년 큰 규모로 대외적자를 내지만 그 적자 달러를 다른 나라들이 서로 가지려고 하고, 가능한 많이 갖기 위해서 다른 나라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달러 가치 하락을 막고 있다.

나아가서 수출로 벌어 축적된 달러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므로 미국은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달러 헤게모니라고 부를 수 있다. 달러 헤게모니 아래서 미국과 아시아는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럼 이런 상태가 무한정 계속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오래 계속될 수 있다면 미국은 지상 낙원이 된다.

언젠가 이 구도는 깨어진다. 세계의 중심통화국이 주변국의 빚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이 구도에는 이미 금이 가고 있다. 원유가격이 올라 중동 산유국으로 엄청난 달러가 들어가면서 미국과 아시아의 공생관계는 더 계속하기 어렵게 되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금융시장의 불안정은 바로 달러 헤게모니와 깊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하상주 가치투자교실 대표] 블로그